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 (문단 편집) == 상세 == 철저한 성격으로도 유명하다. 내용이 완벽하게 정리되기 전에는 절대 발표를 하지 않아서, 누군가가 최초로 발견해서 발표했는데 알고보니 가우스의 노트 한쪽에 이미 끄적여져 있었다든가 하는 일화가 많다. 참고로 이 내용은 분량이 노트 19페이지밖에 안 되는데 하도 내용이 암호처럼 적혀있어 아직도 완벽하게 해독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사후에 그가 남긴 자료를 분석하던 학자는 '그의 연구가 제때 발표되었다면 수학 역사가 50년은 앞당겨졌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이런 가우스도 풀지 못한 난제가 하나 있었는데 바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이다. 해당 문제는 20세기 말에서야 [[앤드루 와일스|간신히 증명되었다.]] 이와 관련해서는 논란이 있는데 알려지기로는 주변에서 이 페르마가 제시한 난제를 가우스라면 풀 수 있을 것이라며 도전할 것을 권하자 "그런 문제는 전혀 관심 없다. 참인지 거짓인지 증명도 안되는 명제를 만들라면 나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가 당시로서는 증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눈치챘을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는 수세기가 거치고 나서야 현대수학의 최신 이론을 총동원한 끝에 겨우 증명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의 학계에선 대체로 그 당시의 수학적 도구로는 애초에 증명이 불가능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가우스는 [[에바리스트 갈루아]]의 논문을 읽지도 않고 버려 나중에 비난을 들었지만 많은 논문을 보고 개차반이 많아 보는 게 쓸데없는 것이라고 여겨 그랬다고 변명했다. 그리고 나중에서야 갈루아의 논문을 읽어보고 가우스나 많은 다른 수학자들도 뒤늦게 '왜 읽어보지 않았던 건가!' 라며 두고두고 후회했다. 그래서 가우스는 이전과 달리 오는 논문을 무조건 버리지 않고 조금씩이라도 보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한 마디 더 하자면 가우스는 갈루아의 논문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진짜 몇 안 되는 천재 중 하나였다. 코시 같은 대가도 갈루아 논문을 읽고 "이거 설명도 제대로 없고[* 갈루아가 살아 생전 인정받지 못한 게 개차반 같은 성격과 더불어 이런 설명도 없이 "나는 아는데 너는 왜 모르냐? 알아서 봐라"라는 태도를 취한 점이었다. 누구에게나 이래서 대학 면접에서도 탈락하고 다른 선배나 수학자들에게도 건방지다며 인정받지 못한 원인이 되었다.] 너무 뭣같이 써서 도저히 못 알아처먹겠다"면서 포기한 거 보면[* 다만 코시 같은 경우에는 갈루아를 인정했다는 주장도 있으며 갈루아 문서에 나오듯이 여러가지 설이 전해질 뿐이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건 지 알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